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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늬의 외삼촌으로 유명한 (?) 6선 문희상 의원은

대한민국의 정치인. 제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이며 현직 국회의장입니다.


의정부시 행복로 근처에 위치한 서점 숭문당의 창업주. 호는 정흥[正興]인데 

사실은 개명 전 이름은 문정흥이었습니다. 야구인 김영조의 사위이며, 미스코리아 출신 배우 이하늬의 외삼촌입니다.



대한민국의 제14대, 16대~20대 국회의원이며 경기도 의정부시에선 깊게 뿌리를 내렸네요. 그리고 참여정부 시절에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내기도 했으며 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2번이나 역임한 거물급 인사다. 20대 후반기 국회의장으로 당선되어 국회법에 따라 더불어민주당 당적이 소멸되고 현재는 무소속. 


동교동계 직계와 친노계에 모두 해당하는 인물이며, 친노계의 많은형님격인 인물입니다.


1945년 경기도 양주군 의정부읍에선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에 아버지가 의정부 지역의 대지주였습니다. 말하자면 다이아몬드 수저. 

그는 명문고로 유명한 경복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코스를 밟게되죠


성함

문희상[文喜相]

출생일

1945414[74]

출생지

일본령조선 경기도 양주군의정부읍

출신가문

남평문씨

병역

해군중위전역

최종출신학교

서울대학교법학학사

종교사항

천주교[세례명: 바오로]

결혼유무,(배우자정보)

김양수

자녀관계

슬하12

소속정당

무회사(소속사)


하지만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학생운동에 투신, 여러 번 감옥을 들락날락거렸네요. 이 때문에 행정고시를 준비하기도 했으나, 그만두고 1980년대 반독재 투쟁을 벌이던 김대중 휘하에선 민주화운동을 벌인다. 의정부시가 전방 지역이고 원래 실향민이 많아서 레드 콤플렉스가 심한 지역인 데다가, 아버지 또한 열혈 박정희 지지자로서 매우 보수적인 인사였기 때문에, 당시 "빨갱이"로 매도되던 김대중 밑에선 일하는 아들의 행동에 대노했습니다고 합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김대중이 총재로 있는 평화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의정부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주공화당 김문원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습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습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 홍문종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습니다. 1998년 김대중이 대통령에 취임하자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김대중이 당선된 날 아버지 묘소에 가서 "아버지! 제가 간 길이 옳았죠!" 라고 오열했다 하는군요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현직 국회의요인 홍문종과의 공천경합에선 이겨서 출마하였고 무소속 홍문종, 한나라당 김문원과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습니다. 그러나 2003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에 임명되자 국회의원직을 사임하였습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기도 의정부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한나라당 홍문종을 상대로 당선되었습니다. 같은 해부터 2006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2005년에는 전당대회를 통하여 열린우리당 의장이 되었으나, 연이은 재보궐선거 패배와 지지율 하락으로 인해 정세균 원내대표에겐 의장직을 물려주고 사임했습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한나라당 김상도 후보를 상대로 당선되었습니다. 이후 18대 국회 전반기 부의장을 지냈습니다. 



다시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다시 김상도 후보를 꺾고 당선, 5선 의원이 되었습니다. 이어 열린 대선에선 민주당이 패배, 지도부가 사퇴하자 첫 번째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었습니다. 계파색이 옅었기에 도움이 되었습니다는 것이 후문.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각종 논란을 일으키고 사퇴하자 두 번째로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었습니다. 정세균 상임고문, 원혜영과 또한 당내 여러 인사들과 친화력이 높아 당내 대표적인 관리형 정치인으로 꼽힙니다. 공교롭게도 셋 다 모두 범 친노계 인사로 꼽힙니다.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선 일본 특사가 되었습니다. 사실 일본통까지는 아니어도 일본과 나름대로 연이 있는 인물입니다.



5월 17일날 열린 일본과의 외교회담에선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해 한일 양국, 한미일 삼국의 긴밀한 연계가 중요함을 강조하였고 빠른 시일 내에 정상회담을 하는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또한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를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는 입장을 전달하였습니다. 그러나 특사의 성격을 지닌 만큼 재협상 등의 요구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마찬가지로 논란이 되었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의 경우 회담에선 논의 되지는 않았지만, 추후 유지 여부는 새 정부가 정할 일이라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는 2017년 국회 본회의 출석율를 기록했습니다. 다선의원들이 대체로 정당 활동이나 지역구 활동에 전념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놀라운 기록입니다. 문 의원을 제외하고 출석율 100%를 기록한 의원들이 모두 20명인데 모두 초선이나 재선, 높아봐야 3선 의원들입니다.